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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풍류 [이산 저산 서울한바퀴] (2017.10.20 -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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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정


   2017.10.20(Fri) - 11.02(Thu) 

   Opeing reception 10.20Fri) 5pm
   관람시간 : 10:30-18:00 (매주 월요일 휴무 _ Closed on every Monday
)
   세움아트스페이스 제1,2,3,4전시



◈ 전시 소개

와유(臥遊), 그림에서 ‘우리’를 만나기
-작가 조풍류의 개인전에 부쳐-


1.

"내가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정신을 펼칠 뿐’이다.
이것보다 무엇이 먼저겠는가?"

375년에 태어나 443년까지 세상에 머물며 예술과 사상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종병(宗炳)이라는 사람이 남긴 글 중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는 중국의 분열기로 일컬어지는 남북조 시대가 시작될 당시에 살았습니다. 예술에 관해 이 사람이 펼친 생각은 이후 동양의 예술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용한 부분에서 ‘정신을 펼친다’는 우리말로 옮긴 것이고 한자로 된 원래의 글에서는 ‘창신(暢神)’이라고 썼습니다. 동서양의 구분 없이 사람들은 웅크린 것보다 쭉쭉 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운동, 스트레칭이라고 하는 동작으로 몸의 근육과 관절을 자극하여 그 기능을 원활하게 하도록 만들지요. 정신도 마찬가지라고 여겼습니다. ‘창신’은 마치 육체처럼 쭉 펼침으로써 정신 원래 능력을 회복하고 향상하려는 시도를 말합니다.
종병이 회복하고 향상시키려는 정신은 막연한 개념이 아니라 ‘삶의 근본’이었습니다.

“생명의 형성은 감정으로부터 예견된다. 남녀가 감정을 맺고 만물이 화생하는 것에서, 모두 정신이 감정으로 맺어진다. 감정이 자기에서 맺어지면, 모든 정신은 형체를 받는다. 대체로 감정이 삶의 근본임을 알 듯하다.”

삶의 근본으로서 정신에 관해 종병이 더 상세하게 말한 부분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정신은 ‘감정’으로 더 구체화하고, 형체를 얻되 그것이 삶의 근본이 된다는 요지인데 이로써 우리는 종병이 육체보다 정신, 감정이 생명의 근본이라 말함을 알 수 있습니다. 몸은 그저 정신이 머무는 곳과 같다는 생각이지요.
이는 그 당시에 깊이를 더해가던 불교(佛敎)와 뗄 수 없는 사상계의 경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지만 종병의 이런 생각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단지 불교사상의 해석과 전파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이 생각에서 위대한 예술정신을 추출했기 때문입니다. 이왕 종병의 말을 옮겨왔으니 조금만 더 빌려오겠습니다.

“바위와 숲은 희미하고 바람과 물은 투명하다. 그런 풍경을 가슴에 담으면 오히려 확 트이며 텅 비게 됨이 있다.”

종병은 정신을 펼친다는 생각을 산수(山水)로써 설명했습니다. 옛날 성인(聖人)들은 육체와 물질의 욕망을 줄이고 이치[道]에 이르려는 데 노력했으며, 그 노력은 산수를 좋아함으로 구체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종병이 말하는 山水의 의미는 나무, 흙, 바위, 물 등의 물질이 덩어리를 이룬 집합체가 아니라 성인으로 나아가는 방법이었던 셈입니다. 옛사람에게 산수는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화가 조풍류는 벽이 사방을 두르고 있는 작업실을 벗어나 삽니다. 늘 돌아다닙니다. 이 산, 저 산, 산에 오르고 여기, 저기 길을 걸으며, 첨벙첨벙 물을 건너 다닙니다. 높은 곳에 올라 돌아보기를 좋아하고 내려오며 절로 이는 흥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하고는 합니다. 길을 좋아하고 산을 사랑하며, 소리로 자기의 흥을 풀어내는 화가 조풍류! 그의 산수화는 어떻습니까?

작가는 아마도 자신이 사랑하는 산과 물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모양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연인이 어찌 생활하는지 그 모든 것이 궁금하여 묻고, 보고 싶은 것처럼. 그렇게 그는 캔버스에 옮기고 싶은 산수를 사시사철 찾아갑니다. 밤낮도 없지요. 이 전시에 나온 그의 대형 그림 <인왕산의 달밤>이 그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서울의 산이 여럿이지만 인왕산을 유달리 사랑하는 작가는 서촌 일대를 품고 있는 이 산의 참모습을 밤의 정경에서 찾은 듯합니다. 밤은 안식의 시간이고 생명들이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따뜻함을 찾아드는 때인데 조풍류는 그 안식처와 따뜻함을 마을을 감싼 산이 지니고 있다고 여깁니다. 화면 아래 가득한 만상(萬象)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지만 하나의 달을 함께 바라보며 푸근한 산의 품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니, 이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저마다의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은 오늘날 작가가 지향할 가치 가운데 소중한 것입니다. 감정의 공유는 곧 공감이고 이것은 서로의 삶을 알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연민으로 이어지며, 연민이 시민의 연대로 이어짐은 지난 세월에서 우리가 경험한 바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그림 앞에서 공감-연민, 그리고 커다란 산아래에서 같이 숨쉬는 존재들로서 ‘연대감’마저 느낄 수 있습니다.
조풍류 작가의 이런 지향은 그의 대폭 그림들에 골고루 들어있는 듯합니다. <수락산>이나 불암산에서 내려다 본 노원 일대를 그린 <상계동>과 같은 대형 작품들에 담은 그의 ‘감정’은 도시인의 삶을 바라보는 그의 ‘공감과 연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림과 성인(聖人)을 함께 이야기한다는 것은 매우 낡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그 성인 대신에 ‘시민’과 ‘지성인’을 생각하지요. 그러므로 조풍류에게 인왕산, 수락산과 같이 우리를 감싸고 있는 산은 ‘우리’를 바라보는 거울이니, 그 속에는 우리가 있습니다. 그 점에서 그는 자신의 뜻을 그림에서 펼친 셈이기도 합니다.

2.

동양 그림의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대상과 닮게 그리기’에서 ‘나의 뜻을 옮겨 그리기’로 지향이 넓혀져 왔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려는 대상의 모양을 그대로 화폭에 옮겨 그리려는 의지가 먼저였고, 꼭 닮게 그린 그림은 언제나 ‘잘 그린 그림’의 조건이었지요. 그래서 앞서 나왔던 종병과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사혁(謝赫)이라는 사람은 자기 시대까지 활동했던 이름 난 화가들을 평가하고서 ‘좋은 그림’의 조건 여섯 가지를 나열했습니다. 흔히 ‘사혁의 육법’이라고 불리는데, 여섯 가운데 처음 둘은 기본 원칙을 제시한 것이고 셋째와 넷째가 형식을 구체적으로 말한 것인데 ‘대상과 일치하는 모양’과 ‘대상에 맞는 색채’가 그것입니다. 사혁은 모양과 색채가 중요하다고 주장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고대의 그림들은 모양과 색으로써 대상의 참모습을 옮길 수 있다고 여긴 결과였고, 그에 따라 형태와 색채의 중요성은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사연으로 초기 그림은 ‘채색화’였습니다. ‘색을 부려 쓰는 그림’에서 색이 어떤 가치일까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연에서 화폭에 가져다 놓을 수 있는 색은 너무 희귀했기에 대상에 맞는 색을 구하기 위한 화가들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습니다. 그 가운데 ‘푸른색[靑/Blue]’은 가장 고귀한 색으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나는 광석에서 얻은, 그 색을 낼 수 있는 안료는 천하의 보배로 여겨져 왔지요.
세월이 지나도 그 푸른색은 여전히 귀합니다. 비싼 값보다 그 색을 들여다 볼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 때문에 더 귀합니다. 가령, 조풍류의 그림들에 펼쳐진 밤하늘의 푸른색을 들여다 보면 고귀한 공간 속에 떠있는 듯한, 깊은 물속처럼, 부드럽지만 경외로운 빛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 느낌은 오로지 조풍류가 부리는 색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푸른색은 조풍류의 색이라고 하기에 충분합니다. ‘풍류blue’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습니다.
색을 사용하는 그림은 앞서 말한 대로 그 연원이 깊어, 동양 그림의 역사의 전체에 걸쳐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조풍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색채가 과거의 그것과 같다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면 조풍류 그림의 푸른색은 물리적인 색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부려 쓴 색이 펼쳐진 밤하늘을 보시지요. 그 하늘은 깊고 무겁지만 칠흑에서는 느끼지 못할 ‘빛’이 있습니다. 밤하늘은 빛이 없어 어두운 하늘이라 여기기 십상이나 그 깊은 공간에서 은근하게 베푸는 빛을 느끼면 저 푸른색이 얼마나 그 밤하늘에 어울리는 색인가를 ‘공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색으로 보여주는 밤하늘 앞에 발길을 멈추고 한참 들여다 보지요. 저 속에 내가 있는 것 같아...하면서요. 이것이 어쩌면 그 옛날에 사혁이 말했던, 좋은 그림의 조건 가운데 하나인 ‘대상에 맞는 색채[隨類賦彩]’의 원리이며, 조풍류가 청춘을 바친 채색화의 정수(精髓)입니다.

3.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을 이치로 삼는 것은 ‘닮음’이 잘 이루어졌을 때, 눈도 똑같이 반응하고 마음 또한 함께 이해하는 것이다. 눈으로 반응하고 마음으로 이해하여 정신을 감응시키면, 정신을 초월하여 이치가 얻어지게 된다.”

다시, 종병의 생각입니다.

도시인으로 살면서 시간을 내어 두 발로 산을 오르고 물을 건너는 것은 눈으로 보기 위해서입니다. 작가 조풍류는 북악에 올라 인왕산을, 불암산에 올라 수락산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닮음’으로 화폭에 펼쳤습니다. 그 펼침은 종병의 말처럼 눈으로 반응하는 것처럼 마음으로 함께 이해한 바입니다. 그리고 그 이해는 정신-감정과 감응하고 각자의 입장을 초월하여 ‘공감’을 얻는데, 이것이 종병이 말한 이치와 다르지 않겠지요.
조풍류 그림으로 얻는 ‘공감-이치’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의 그림 구석에 조그맣게 들어가 있는 인물들이나 집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곧 우리겠지요. 그림 밖에서 우리가 그 안에 있는 자신을 들여다 보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는 짧은 시간이라도 말없이, 실제 자신의 삶을 떠올려 생각하지요. 나와 나의 가족, 친구,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그 옛날 종병은 커다란 담론으로서 예술과 사상을 논했지만 우리는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낍니다. 그는 왕조시대, 신분사회 속에서 살았지만 우리는 현대의 ‘시민(市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병의 복잡하고 심오함보다는 나와 우리의 공감, 연대가 더 큰 가치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가 평생을 찾으려 했던 이치나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 사이에 우열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종병이나 우리나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조풍류의 그림은 색과 형태로 말하는 가치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가 ‘사람’임은 이제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나와 동행한 가족, 친구가 함께 만나는 사람, 조풍류.

그의 그림에 ‘우리’가 있습니다. 그림에서 우리를 만나기, 이것이 진정한 ‘와유(臥遊)’입니다.

                                                                                                                                  ■류승민.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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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암산에서 바라본 수락 도봉 삼각산_캔버스천에 먹 호분 분채 석채_130x220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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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도_캔버스천에 먹 호분 분채 석채_90x160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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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위_캔버스천에 먹 호분 분채 석채 금니_50x60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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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_한지에 먹 호분 분채 석채_41x53cm_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