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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수 개인전_Interspace ;


조현수 개인전 'Interspace ;'
_ 2016.06.17 ~ 2016. 07. 03   AM10:30~PM06:00
_ 휴관일 / 2016.06.20
_ Opening / 2016.06.17 PM06:00




웹인비 최종수정.jpg
 

조현수의 작품에는 다양한 사물의 재현물이 등장한다. 그는 낯설지 않은 일상적인 오브제를 입체로 표현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상을 무작위로 본뜬 중성적인 객체가 아니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지니고 사용해온 물건, 지인에게서 받은 골동품, 과거의 흔적이 묻어 있고 현재의 삶에 인접해 있는 갖가지 사물을 엄선한다. 따라서 그가 만들어낸 작품이 명시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 있는 일반적인 물체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사적이고 개인적인 맥락이 담겨 있는 세상에서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도 된다. 이를 위해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오브제를 채택하지만, 원본 그대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작업 방식을 모색한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독특한 제작법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일상용품의 외관을 그대로 복제한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직접 선택한 오브제 혹은 손수 제작한 형상의 본을 뜬 다음, 특수 배합한 강화플라스틱 액체를 물감 삼아 형틀 안쪽 표면에 그리거나 흩뿌린다. 시간이 지나서 틀과 분리하면 비로소 응고된 작품의 형태가 등장한다. 여기에는 재료를 깎아 내거나 덧붙이는 조각(彫刻)과 소조(塑造)의 기법이, 그리고 형틀에 액체 상태의 물질을 부어서 굳히는 주조(鑄造)의 방식이 모두 사용된다. 하지만 조각에서는 재료의 특징에서 비롯되는 질감과 중량감이 표현 대상과 작품의 주제에 밀접하게 연관되는 데에 비하여, 조현수의 작품은 특수 물감으로 칠한 표피만으로 이루어져 내부가 텅 비어 있으며, 안료의 속성에 큰 구애를 받지도 않는다. 또한 소조에서 외부로부터 형태감을 조절하는 것과는 달리, 속을 반대로 뒤집은 것처럼 안쪽의 표면에 칠하는 내부의 공정을 중심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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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olin_ 레진_ 60×20×12cm_ 2014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을법한 평범한 물건은 사실상 다소 복잡하고 세밀한 작업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창작품이다. 작가는 형상을 틀에서 꺼낸 후에는 작품의 외부에 덧칠하거나 어떠한 변형을 가하지 않는다. 분리하기 전에 형틀의 내벽에 얇은 층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대상의 모든 특징을 표현한다. 그리하여 작품의 물리적인 크기는 원본의 외양으로 한정되지만, 완성작은 본래의 질적인 속성과 전혀 다른 특수성을 띄는 새로운 개체가 된다. 설명을 듣거나 작품명을 읽지 않아도 누구나 무엇을 지칭하는지 알 수 있을 익숙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눈으로 인식되는 사물의 역할을 모두 잃어버렸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 예상되는 용도로는 사용이 불가능하며, 단지 전시 공간에서 구현되는 예술 작품으로만 작용할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조현수의 작품은 첫 번에 겉으로 보이지 않는 이면의 지점들을 지닌다. 무작위의 대량생산물 중 하나인 것 같으나 특별히 채택된 유일한 존재이며, 재현 대상의 외적인 표징을 분명하게 드러내지만 사물의 원래 기능으로 작용할 수 없다. 따라서 기성품을 이용해서 미술계 제도권의 문제를 지적하거나 현대사회의 상업 중심적인 속성을 노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입체조형물이지만 드리핑(dripping)한 선의 조합만으로 구성되어 내부가 비어 있고, 전통적인 조각 매체의 부피감과 중량감을 느끼기 어렵다. 그러니까 형틀을 위한 원본이 기존의 제품인지 작가가 만든 형상인지 하는 문제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제작 과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작가의 독자적인 기법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중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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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mera_ 레진_ 9×14.5×9.6cm_ 2014_ edition 1/3

 


 

그와 같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으려는 예술가의 부단한 노력을 지켜보고 있자면, 창작을 향한 충동의 근원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일곤 한다. 인간이 가진 육체적인 힘과 기술로 세상에 없던 존재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경향은 흡사 세상과 만물을 창조한 조물주의 의지와 닮았다. 신의 형상에 가장 가깝다고 전해지는 인간에게는 신적인 습성의 하나로 창조성이 잔재하는지도 모른다. 신이 자신을 본뜬 인간을 친히 창조하고 나서야 만족했던 것처럼, 사람도 원초적으로 자기와 닮은 가장 이상적인 대상을 찾아내서 곁에 두거나 소유하려 들고, 그러지 못한다면 직접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존재에 대한 결여를 충족하려는 다양한 인간 활동의 일환인 창작 행위와 그 결과물에는 자연스레 자기복제적인 특징이나 혹은 갈구하는 대상에 대한 반영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동일한 맥락에서 보면, 예술 작품이야말로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구의 충족을 목표로 하는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대체물이자 현존이 불가능한 이상의 성취를 지향하는 가장 순전한 상상의 구현물로서 작용한다. 특히 아름다움을 형용하기 위하여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미술에서도 입체적인 작품은 공간을 차지하는 물리적인 양감 덕택에 보다 더 실제적인 존재감을 자아낸다. 삼차원의 작업은 착시와 암시를 활용하여 모사를 꾀하는 평면적인 것보다 감각적인 수용점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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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ng-playing Record #1_ 레진_ 0.5×30×30cm

 
 

 


허나 그렇다 할지라도 완성된 작품이 기대했던 그대로를 재현하거나 바라는 이상을 완벽히 실체화하기는 불가능하며, 사실은 꼭 그럴 필요도 없다. 조현수가 입체 작업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의 즐거움을 자주 언급한 것처럼 창작의 과정과 존재 자체에서 기인하는 순수한 충족감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효용이 없거나 통용되는 가치로 인정받을 수 없을지라도 그 당위성과 상관없이 예술 행위에는 자기만족적인 창작에의 의지가 존재한다. 이는 비단 예술가로서의 독창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일련의 물건을 수집하거나 보존하고자 하는 매우 보편적인 인간의 욕망과도 연결된다. 존재의 공허를 느끼는 한 자신을 제외한 외부의 존재를 향한 갈망은 그치지 않을 것이며,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실존에 대한 자각은 그러한 충동을 부추길 것이다. 따라서 조현수의 작업에서도 그 이면을 유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러면 거기에서 범상치 않은 그만의 제작 과정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직접 시도할 수는 없을지라도, 전혀 다른 식으로 세상에 없던 존재를 빚어내는 사람의, 예술가의, 신의 창조적 행위를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허효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