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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민 개인전 - 닫힌 방 - Closed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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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정

   2017.06.07 (Wed) - 06.20 (Tue) 
   관람시간 : 10:30-18:00 (매주 월요일 휴무 _ Closed on every Monday)

   세움아트스페이스 제1,2,3전시실



◈ 전시 소개


멋진 신세계: 재현되지 않은 얼룩들


 박석민의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필자를 압도하는 거대한 캔버스 표면 위의 세계는 흰색 물감을 섞어 놓은 듯한 탁한 색으로 뒤섞여 실체화된 대상 그 이면을 다양한 층위에서 탐색하도록 한다. 그의 초기 작업은 특정한 장소가 담고 있던 가시적인 파편들에서 대상이 구체화되는 반면, 근래 작업에서는 관찰자로 하여금 이를 명증적으로 파악하도록 쉽게 두지 않는다. 이번 전시 《닫힌 방(Closed Scene)》에서 부분적으로 선보이는 과거와 현재 작은 크기의 작업들은, 기존에 그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색감과 구도, 표현 방법에 다른 갈래로써 대상을 기록하기보다 관찰된 것들과 상상 사이에 꿈틀거리는 감각들을 내적으로 관통한다. 그는 자신의 일과에 눈에 밟히는 모든 대상들을 극도로 미시적이거나 납작하게 렌즈로 직접 채집하여 폐쇄된 공간에서 의식이나 감정들을 연역적인 방식으로 집요하게 끌어낸다. 나아가, 박석민은 사건, 물질, 차원과 같은 각자의 보편적이지 않은 고유한 시간에 주목하여 회화라는 가상의 물성을 통해 연극적인 화면을 설정한다. 


 <1인용 지구>(2017)는 단순하면서도 회화만이 자극할 수 있는 환영적인 감각이 두드러지는 작업으로 필자의 시선에 가장 먼저 들어오며 작업 전체의 서곡과 같은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어둠으로 차 있는 작은 화면을 무심한 듯 생경하게 가득 메운 행성은 라스 본 트리에(Lars von Trier)의 《멜랑콜리아(Melancholia)》(2011)에서 핵심인 혹성 “멜랑콜리아”를 연상케 한다. 시간의 여러 층위가 존재한다면 이것은 그 끝에 하나의 무대에서 인간의 삶을 점유하는 상실된 실체일 수도 있고 피상적인 이미지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박석민의 검정 화면들은 미래에 대한 어떠한 제안도 하지 않고 과거 속에서 벽을 쌓고 있는 아포리즘(aphorism)과 같고 거대한 집단의식의 허상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러한 허상은 도시가 담고 있는 여러 층위와 구조 그리고 배제된 그 이면의 임상적 범주에 대한 실험으로 볼 수 있으며, 작가는 일상에서 포착한 대상의 재현이나 서사가 부재하는 경험 이면에 누락된 뒤섞인 감각들을 연극적으로 설정하고 응시한다.


 박석민은 기억의 질서에 속하지 않은 도시와 일상을 자신이 설정해 놓은 시간의 축에 펼쳐 놓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이를 탐사한다.<collection A#1-3>(2017) 시리즈는 이번 전시의 메인에 해당되는 작품으로 SF적이면서 공간과 대상이라는 요소들이 화면을 초현실적으로 차지하지만 작가의 욕망이 공간보다는 시간에 집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지점은, 관찰자로 하여금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그 틈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끌어오고 설정하고자 하는 이미지에 대한 욕망이 기저에 있다면, 그는 역으로 클리셰한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화면을 무너뜨리고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연쇄적으로 시선을 붕괴시켜 회색 영역으로 존재하도록 한다. 이처럼, 그의 회화를 무대로 상정했을때 그가 무대 위에 올려 놓는 실체들은 거대한 허구같으며 화면 전체를 메우는 거대하고 투명한 비트린 안에 이들을 수집하고 박제시키므로 어떤 불가능한 공존을 유도한다. 그의 이러한 박제 욕구는 그것을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관찰 행위를 돋보이게 만듦으로써 화면 안에 공존하는 영역을 분할하고 대상에 개입시킨다.


 <autopilot>(2017)에서 프리즘과 같은 섬광은 캔버스 곳곳에서 냉소적이고도 대담하게 화면의 절반 이상을 각인하듯이 차지한다. 이외에도, <cosmic station>(2017) 시리즈에 등장하는 빛은 작가가 선택하고 집중하는 이미지들이 유포되는 속도처럼 회화가 갖고 있는 물질을 통해 캔버스 위에 현장을 가설하고 탐사하는 도구이자 환경을 다층적으로 인지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은 관찰된 익명의 중첩된 사건이나 대상에 대한 물질성을 모조리 잃고 과하게 압축되어 빠르게 이동하는 속도를 얻은 것 같다. 즉, 작가가 이미지 자체의 실제적인 존재 조건들이 균열되는 것을 허락하고 유동적인 시간의 단락에 집중하여 시각적 유대를 무의식 중에 해체하고 이에 저항한다. 여기서 관찰자는 습관적으로 어떠한 서사를 화면에서 찾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unfolding site-주머니쥐가 학습한 스몰마켓 전개도>(2016)처럼, 그의 회화는 재현과 서사, 감상적 풍경이 아니라 짧은 순간에 심리적으로 확장된 납작한 이미지 이면에 집중한다. 박석민은 이것을 “얼룩”이라고 명명한다. 이 얼룩들에 대한 고정되어 있지 않은 의식의 풍경이나 사물의 파악은 관찰자들로 하여금 의식에게 대상들의 속성을 동시에 제공하지 않는다. 결국, 작가가 네러티브를 문제삼지 않는 과정에서 안착되는 인상들의 결합은 은폐되지 않은채 화면에서 적나라하게 펼쳐놓은 가상적인 형태들로 중첩되어 나타난다.


 캔버스 화면에 필연적이든 우연적이든 중첩된 얼룩들은 지시체가 없는 방대한 양의 이미지와 기하학적인 형태들의 조합으로 화면을 과열 상태로 만든다. 작가는 때로는 얇게, 때로는 두껍게 색의 스펙트럼을 넓게 사용하여 도심 지층들의 단면을 잘라 그 지형들과 내, 외부의 공간들을 분할한다. 부유하는 얼룩들은 깨진 픽셀 같으며 그가 만들어 놓은 연극적인 환영 같다. 나아가, 이것은 인간이 존재하는 혹은 존재해왔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지층들을 무의식 중에 집요하게 해부하고 탐색하고자 하는 호기심처럼,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The Tempest)』나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반어적으로 외치는 불가능한 공존 또는 현실에서 누락된 실체의 이면일 것이다. 박석민은 이를 회화가 담고 있는 물성이 수반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실체적 현실을 낭만적으로 “복구”해낸다.


■ 추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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